천삼나라 /농장 소식

귀농일기 벗이란 아라리

▶아라리 아자씨 2008. 2. 9. 09:47

 

시골집 지붕에 눈이 한자나 얹혔습니다.

이런날에는 여기저기 골짜기에 사는 귀촌한 분들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시골이 좋아 내려와 살기는 하지만 눈이오면 맘대로 드나들지를 못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눈에 갖혀 며칠씩 사람 얼굴을 못 보고 살기도 합니다.

그 중에 정선에 사시는 아라리님이 제일 심하여 사람얼굴을 보여 주자고

공기리님댁과 뜻이 맞아 그나마 날씨가 좀 따뜻한 날에 길을 나섰습니다.

아라리님은 산 중턱 부분에서 산양산삼 농사를 하시는데

여든이 넘은 어머님과 함께 사십니다.

지난 가을부터 통나무와 흙을 이용해 새로운 집을 짓고 계시는데

겨울이 들어 서면서는 거의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그 며칠전에 인터넷게시판에 눈속에 갖혔다고 글을 올린적이 있었는데

예상데로 차는 산을 중턱도 안 올라가 못 올라 가겠다고 발을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산골에서는 이 코다리가 걸어 놓고 먹기에

가장 유효하기에 속초에서 장금이님이

보내 주신 것을  좀 나누어 가지고 갔지요.

 

요즘 우리의 삶은 잘 걷지를 않고 살기에

이렇게 걸어 가려면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합니다.

오늘 이곳을 가려고 공기리님 댁은 신발도 새로 장만을 하였지만

걷는 일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걸으면서 얻는 것도 많지요.

차를 타고 가면 그냥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도 새롭게 만나고

일부러 운동도 하는데 운동도 꽤나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어느정도 길을 올라가니 눈 속에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보나마나 아라리님 발자국일 것입니다.

그 발자국 위에 다시 눈이 내린것을 보니 산을 내려 왔다가 간지도

며칠이 지났나 봅니다.

공기리님이 코다리를 하도 흔들고 지나가서

뒤에 가다 보니 길에 한마리가 뚝 떨어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 가끔 학교를 가다 보면 길에 이렇게 고등어나

이 코다리가 떨어져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이웃 아저씨께서 술을 드시고 고등어 한손 사 오시다가

이렇게 뚝 떨구고 가시는 것이지요.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 저 술 한잔도 안먹었어요..."

하고 황당해 합니다.

좀 힘들어 질 때쯤하여 드디어 아라리님집이 언덕 위로 보였습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지요.

전화도 잘 되지 않아 연락도 못 했는데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개들이 오랫만에 사람소리를 듣고 난리법석 입니다.

소리를 듣고 아라리님 어머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우리를 알아 보시고 무척이나 반가워 하십니다.

열흘이 넘게 마을에도 못 내려 가시고 사람 얼굴도 못 보셨다고 합니다.

여름에 뵙고 겨울이 되었는데 어머님은 더 젊어 지셨습니다.

쌍지팡이를 짚고 산을 올라 온 공기리님네를 보시고

너털웃음을 웃으십니다.

눈을 치우는 일이 큰 일이기에 사람이 다니는 길만 이렇게

치워 놓았습니다.

뒷쪽에서 찜질방 만드는 일을 하고 있던 아라리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오랫만에 사람구경을 하는 개들이 열심히 목청을 돋우고

주인의 만류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가을에 시작한 집은 벌써 마무리가 다 되고 살림을 들여 놓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눈을 헤치고 벗을 찾아 온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라리님은 몇년전부터 파킨슨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귀촌을 한 이유도 신병치료가 가장 큰 목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중국에서 오신 황산님께서 아라리님 이야기를 듣더니

거기에 좋은 약이 있다고 그 약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택배로 받을 수가 없는 귀한 물건이라 서울에서

풀잎편지 쓰시는 백암님이 그 약을 받아서

다시 남편 아무렴이 일부러 서울을 올라가서 받아 가지고

전해 주러 오게 된 것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약을 주신 황산님이나

일부러 시간을 내어 약을 받아준 백암님도 모두 서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되어 새로운 벗이 되었습니다.

그 벗들의 정성이 있기에 분명 이 약을 드시고 아라리님이

좋아 지실거란 확신이 듭니다.

아들의 귀한 벗이 왔다고 어머님께서는 가마솥에 지은밥에

산골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많은 반찬을 차려 점심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도 연실 촌이라 차린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지요.

물론으로 밥을 두그릇씩 먹었지요.

숭융도 오랫만에 마시고 후식으로 가마솥에서 긁은 누룽지도 내 놓으셨습니다.

새로 지은집의 처마가 예뻐서 아무렴이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창을 넓게 내어 놓아 안에서는 아래로 펼쳐지는 산들의 모습이 계절별로 멋지고

이렇게 밖에서는 그림 같은 모습이 됩니다.

점심을 먹고 아쉬워 하시는 어머님께 다시 올 날을 기약하고

산을 내려 왔습니다.

어머님은 한참이나 우리가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내려 오면서 눈이 많이와 길로 쓰러진 나무를 아라리님과 같이 해치웠습니다.

아직 차가 다니려면 두어달은 있어야 하겠지만 온 길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바쁜일을 끝내 놓고 다시 날을 잡아 이렇게 눈에 쓰러진 나무들을 베는 일을

한번 더 해 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아라리님과 작별을 하고 산을 내려 왔습니다.

길가에 오두막이 눈속에 고즈넉 합니다.

한 때는 이집에도 복작거리며 사람이 많이 살았을 것입니다.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름에 농사를 지을 때만 사람이 기거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녀오고나서 또 눈이 많이 내려 이제는 걷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곳에 벗이 있어 힘들지만 이렇게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아라리님과 어머님이 건강하게 계시기를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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